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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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어떤 일기 일상

1.
디오가 아팠다. 열이 오르고 먹지를 못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겨우 잠든 그의 얼굴을 보며, 사람과, 혹은 생명과 함께 살아가기로 연을 맺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픔, 책임, 약속, 사랑, 윤리, 믿음 같은 말들이 명멸했지만, 그 어떤 추상보다도 병상 위에 포갠 손이 차갑고 또 따뜻했다. 

2.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호주의 성소수자 합창단이 한 노래를 가지고 전 세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녹화해서 보내주면, 그것을 편집해서 유튜브로 올린다는 야심찬 기획을 했다. 지보이스도 지난 주에 그 노래를 연습하고, 오늘 촬영.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한국어 버전으로도 녹화했는데, 이것을 따로 편집해서 국내용으로 쓰려고 한다. 작년에는 각국의 성소수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 이것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린 프로젝트에 친구사이 사무국장 기즈베 형이 참여했었다. 

3.
지보이스 단원 한 명이 와서 주고 간 희망법 후원회원 가입신청서. 이런 마음들을 받아, 더 잘해야 할 텐데 하며 소중한 마음들을 매번 되새긴다. 그렇다고 조급해서는 안 되는데. 무엇보다 꾸준히, 필요한 일들을.

4. 
죽음 뒤에도 관계는 남는다. 죽음 이후의 존재방식, 지난 주 오랜만에 <찬란한 유언장> 행사를 비혼과 퀴어를 대상으로 진행하면서 이래저래 생각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티냄과 드러냄 일상

1.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땐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무척이나 티가 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머리가 좀 굵어지면서, 그게 창피하다는 것을 알게 됐었던 것 같다. 
실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걸 창피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됐었다.
사실 티가 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잘하지 못하는데도 잘하는 줄 알며 티를 내는 것, 잘 못하고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티를 내는 것이 창피한 일이다.
못하지만, 스스로 못하는 줄 뻔히 알면서 재미있게 드러내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진지해지면, 진지하게 티를 내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서더라도, 자기를 알고 나와 남이 즐길 수 있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와 남이 즐길 수 있는지가 창피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 나누는 좋은 기준이 될 테다.

2.
그런데 문제는, 나는 지나치게 진지했다. 
진지한 자가 티를 내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완벽해야 한다. 
완벽주의는 과도한 진지함과, 부끄러움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완벽주의자는 완벽을 모른다. 
끊임 없이 노력하고, 연습하고, 시간을 들인다 하더라도, 부끄럽고, 창피하다.

3.
그래서 내가 오래도록 선택한 전략은 최대한 나를 숨기는 것이었다.
친한 사람들 외에서는 말을 줄였고, 
말을 억지로 걸거나 싹싹해야 할 때는 정말 온힘을 짜내가며 겨우겨우 시간을 넘기곤 했었다.
그래도 그와중에 나는 티나는 것을 좋아했으니, 결국 순간순간 나는 내 본질을 들켜버렸고, 그때마다 다시, 몹시도 창피했다.
심지어 나를 가리려고 했던 행동이 도리어 다른 티를 내버리기도 했다.
자신을 가리려는 자가, 자신을 가림으로써 드러다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자가, 드러냄으로써 포커스 아웃이 되기도 하는 이치처럼
그렇게 됐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티내지 않는다는 것의 반댓말은 오직 침묵이라고 생각했었던 착오, 패착이었을지도 모른다.

4.
나는 내가 속할 집단도 그런 집단을 좋아했던 것 같다.
티가 나지 않음으로써 티가 나는 그런 집단.
지지리도 삽질을 하지만, 사실 좀 선명하게, 각지게, 경사지게 흙을 파지는 않거나 못하는 집단.
그런데 그런 집단의 내부는 그래서인지 진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쾌했던 것 같다.
그런 집단들도 종종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서 내부적으로 진지해질 때도 있고, 진지해져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도, 바깥으로도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려는 얘기도 많기 마련이고, 그게 좋다.
삽질은 좀 티나게 하더라도, 재미없는 일자선 도랑을 파기보다, 
굽고 휘어지고 몰아치며 종종 꼬이기도 하고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그런 도랑을 파는 삽질 같은 것 말이다.

5.
나는 요즘 다시 삶의 전환점 근방에 와 있고, 그래서 그 전환 이후의 삶을 종종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티가 나야 할 테고, 생존을 위한 티는 진지해야 할 때가 많으므로,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도 여전히 굽고 휘어지고 꼬이는 도랑을 파는 삽질을 했으면 싶다.
적어도 나 자신이 내는 티는
좀 더 솔직한 티였으면 좋겠고, 못하고 빈 구석이 좀 있지만 대체로 즐거운 티였으면 좋겠다.
얼마 전 참여한 지보이스 합창 공연을 끝내고, 우리는 잘했다, 라는 반응보다는 재미있었다, 라는 반응으로 가득 찬 웹페이지를 보며
살짝 절망하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진지해서 잘한 것보다, 우리와 관객이 재미있는 것이, 그렇게 티가 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6.
나가면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렇다고 바로 사업이나 활동이라고 할 만한 일들은 아직 기획이나 아이디어 수준이다.
해 보지 않으면 어차피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움직여 보면서 경험하고 다듬어나가면서 배워나가고 변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생각하는 것은, 티 내기보다는, 성과를 바로 내기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것. 
너무 거창하게, 너무 진지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쾌하게 하겠다는 것이 분노하지 않겠다는, 눈물을 피하겠다는 말은 아닐 테고, 
특유의 진지함이 필요할 때에는 웃음기 없는 집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이 유쾌함을 위한 수단이 될 뿐.

느릿한 산책과 돌아다님을 좋아할 것이다.
돌아다니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티가 나는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는 개구쟁이의 표정으로 즐거운 몸짓을 보여줄 것이다.
울면서 길을 가다 누가 말을 걸면, 펑펑 안겨 눈물을 쏙 빼다가 농담을 던질 것이다.

말을 줄이고 자신을 감추기보다는,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수줍게 드러내는 것.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것. 
티냄과 드러냄은 이렇게 다른 것이므로.

티내지도 말고, 가리지도 말고, 길을 가야겠다.

2009년의 스펙터클과 <종로의 기적> 잡것

1.
나에게 가장 스펙터클했던 해는 2009년이었다. 차갑던 연초 용산에서는 한 번에, 하루만에, 몇 명의 목숨이 불탔다. 그리고 어느 주말 한 전직 대통령은 세상을 떴고, 얼마 안 있어 다른 전직 대통령의 국장이 있었다. 한국에 아주 오랜만의 개기일식이 있었고, 개기일식이 있던 날, 대통령이 히죽 웃으며 개기일식을 구경하면서 사진 포즈를 취할 때, 국회는 날치기로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우리 지보이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장마철에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대구에 공연을 갔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채 서늘해지기 전 우리의 형제이자 자매 '스파게티나' 영수 형은 병원에 입원했고, 채 겨울이 오기전 형은 세상을 떴다.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가 한창 <종로의 기적> 다큐를 촬영중인 때였다. 

2.
이번 주에 <종로의 기적>이 개봉된다. 리뷰기사와 영화를 보신 분들이 올린 글들을 읽으며, 자꾸 눈물을 쏟게 되는 것은 나뿐은 아닐 것이다. 병권과 욜, 기즈베와 남일당으로 달려가던 기억, 추웠던 12월 어느 날 HIV 인권 피켓을 들고 종로바닥을 뛰던 밤, 영수 형과 다시 함께할 수 없는 그 눈물과 웃음들, 아, 서로 싸우고, 함께 싸우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얼굴붉히고, 소리치고, 손잡고, 팔짱끼던 날들. 

영화 <종로의 기적>은 나의 스펙터클이 참 많이 담긴, 사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가장 내가 크게 웃을 수 있고, 내가 가장 목놓아 울 수 있는 영화이다. 그 영화가 이번 주에 개봉해서, 자꾸만, 벅차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야 만다. 

3.
그래서 개봉관 몇 안 되는 독립영화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이렇게 내 사심으로 부탁해도 될까, 하면서도, 정말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이 영화의 스펙터클이 결국은 이 2000년대를 통과해 온 사람들의 스펙터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갖는다. 그래서 정말이지 재미있고, 좋은 영화였다고, 기억될 것이라고 믿는다.

4.
오늘 경향신문에는 친구사이 회원들이 나오는 한 면짜리 포토다큐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나오는 한 장면, 포장마차는 영수 형이 오지게 가던 데였더랬다. 영수 형이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가기 전전날, 그곳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취한 말들을 나누면서, 술을 마셨었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스파게티나의 마지막 술이었을 게다. 형, 우리만 남아 거기서 여전히 웃고 떠들고 취해서, 미안해요. 형이 없어서 많이많이 아쉬워요. 

보고싶소, 형. 
영화가 개봉한다니까, 더.







본업보다 부업 잡것

1.
도대체 왜 본업보다 부업이 재미있는가? 왜 교육을 받다보면 주제보다 삼천포로 빠진 얘기들만 기어나는 걸까? 왜 본문보다 각주가 더 인상적일까? 왜 본질보다 부수적인 것이 더욱 강력하게 되는가? 그러니까... 왜 딴짓이 더 재밌는 걸까? 

그건 아마도 부담이 덜하고, 좀 더 갖고 놀거나 개입하기 쉬우며, 재량이라는 것이 더 많고, 흑백 속 칼라같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공부는 하기 싫고, 웹서핑이며 잡다한 일들이 더 끌리기만 한다. 그러나, 본업이 없으면, 부업이 부업이 아닌 게 되듯, 본업도 좀 하자, 응?

2.
학교에서 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 수업을 했었는데, 한 학기는 토론 수업과 평가를 했었더랬다. 학생들은 조별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준비해 오고, 한 시간에 한 주제씩을 하고 평가한다. 선생은 사회자이자 평가자로 참여하는데, 학생들의 주장과 근거는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지라, 결국 선생이 내보이는 태도라고는 네, 그런 주장이 있습니다, 네, 타당한 근거이지요, 글쎄요, 그게 논리적인가요? 하면서 토론자인 학생들에게 '넌 내 손바닥'이라는 것 비슷했던 것 같다. 토론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은 아마 배웠을 것이다. "네, 선생님 잘나셨네요." 참여형 수업이 이러했을진데, 강의식 수업은 얼마나 더했었을까. 이게 교육이었을까? 

선생이 가르쳐주는 것이라고는 너는 모른고 나는 안다는 사실밖에 없다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이것도 어쩌면 수업의 주제보다 더 학생들에게 강력한 교육효과를 낳는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 명시적 교육과정이 아니라 잠재적 교육과정, 그래서 어쩌면 더 학생들에게 각인되는 어떤 것이었을 게다.

3.
하여, 좋은 선생이란 바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억이 나게 하는 요 '삼천포 주제'나 '(넌 바보야라고 하는 것과 같은)잠재적 과정'을 긍정적이고 '교육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선생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본업 없이는 요 부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찬가지.) 가령 딴 얘긴 줄 알고 잼나게 듣고 있는데 뭐시야, 어느덧 이게 오늘 학습목표에 맞닿아 있었단 말인가, 하면서 수업 한 번 잼나게 듣게 하는, 그런 선생 같은 것? 그러나 나는 도무지 그런 선생이 아니었어서,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프기가 짝이 없다. 나는 전형적으로 나 잘났고 너 못났다는 선생이었다.

4.
에혀, 참 많이 배우고 열정 많다는 교수들이, 자기 세계에 갇혀 학생들이게 자기 이야기를, 아주 권력적인 태도로 전할 때, 그것을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때, 도제식 수업이란 이런 것이라고 할 때,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하면 바깥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할 때, 정말 갑갑하고 안타깝고 화가 난다. 좋은 내용 가르치는 것을 담당하면 뭐하나, 선생이 나쁜데. 이건 정말이지 반교육적이다.

이런 선생들은 대체로 자기의 세계"만"이 중심이라고 믿고,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가만 보니 이런 분들 종교가 정말이지 하나 같구나... 이분들은 신과 대화하고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게 아니라, 지가 신인 줄 안다. 오 주여, 지들이 신인 줄 아는 저 가련..하지 않은 인간들을 용서...하실 겁니까? 아멘.) 그러니 저 허약하고 약점 많은 제자들을 어찌 용납할 것인가. 

5.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러가고 있으나... 삼천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6.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연구만 하시지 마시고, 학생들이 더 많이 보게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좀 하시라는 것이다. 선생들은 정말 학생들보다 못나기가 쉽다는 것을 좀 아시길. 학생들한테 "난 잘났다"라는 모습 보이면, 학생들은 "응 너 바보구나, 상종을 말아야지.. 저걸 내가 짜를 수도 없고.."라고 한답니다.(엠비님을 따라하자면, "제가 해봐서 알아요.") 

7.
어쨌건 결론은, 가람군, 웹서핑도 그만 하고, 사람들도 안 보는 여기에 글도 쓰지 말고, 본업인 공부 좀 하시게. 본업이 있어야 부업이 있는 법이라니까, 응? 

콜트 콜텍, 송경동 잡것

1.
수요일에 홍대 클럽 빵에서 열린 콜트 콜택 기타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수요문화제에 다녀왔다. 조금 늦어 진은영 시인의 시낭송은 듣지 못해 아쉬웠고, 하이투힘이라는 밴드의 노래와 소리들이 좋았다. 노래 잘 들었다고, 좋았다고, 말을 걸고 싶었으나 수줍어서 말은 못하고... 하이투힘, 정말 좋았어요. ^^

2.
콜트와 콜텍은 기타를 만드는 회사다. 10여 년 흑자를 내고도 1년 적자를 이유로 2007년 대량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현실적으로 정리해고(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인데도, 이들의 정리해고는 너무 빤하여, 고등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근로기준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해고라고 판단한 바가 있다. 그러나 사측은 위장폐업으로 응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장문을 닫았으니 복직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점유율이 높다는 이 회사의 기타는, 전세계에서 사람들의 흥을 돋구고, 찬란한 창작의 동료가 되고, 아픈 사람들의 가슴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기타를 만든 사람들을 지금 4년째, 부당해고에 맞선 싸움을 벌여야 한다. 올해를 넘겨, 내년이면 이제 오 년째의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어도, 위장폐업으로 뻗팅기는 회사에 맞서 또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힘들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정당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분들과 함께하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미약하나마 문화제에 가고,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함께할게요.

3.
문화제 마지막에는 만화가 이동수와 시인 송경동이 소개되었다. 송경동 시인은 두 달 전 기륭전자 고공농성장에서 부상을 입었었다. 목발을 짚고 오가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송경동 시인이었다. 투쟁과 승리를 이야기하는 시인의 말을 짧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전사지, 전사!"라는 객석에서의 소개가 튀어나오고, 또 시인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니다. 늘 집시법으로나 끌려가는 시인은 시인도 아니다. 시인의 탈을 쓴 전문시위꾼일 뿐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8771 ) 그래도 나는 시인을 봐 버린 걸. 


송경동의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은 첫 시부터가 절창이다.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볼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이야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 <혜화경찰서에서>




어떤 섹스 시장 잡것

섹스를 하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오르가즘보다도 문득 사람의 살이 그리울 때에는 당신은 어디로 가겠는가. 

섹스는 관계를 전제하므로, 함께 섹스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을 섹스의 시장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섹스의 시장에서 각자는 자신이 섹스와 관련해 가진 가치를 맞대 보고 교환함으로써 거래가 성사되어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이런 섹스 시장 역시도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니어서 여기서도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여기서는 적어도 남성만이 매수자로 등장하는 성매매보다는 좀 더 시장답고, 인신매매나 (알선료는 지불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중간착취와 같은 폭력은 개입되지 않는다. 섹스를 하고 싶다면, 성매매 시장보다 섹스시장으로 가는 것이 좀 더 좋은 판단일 수 있다. 섹스 시장은 사실 연령별로도 다양하게 발달해 있어서 생각보다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아예 이런 섹스시장에서 배제되는 경우의 문제는 남는다. 

여기 세계의 많은 곳에, 전국 곳곳에 분포한 아주 근사한 섹스 시장이 있는데, 여기에 참가하는 자들이 지불할 돈은 1만원(이거면 쾌적하게 샤워도 할 수 있고, 섹스할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섹스할 공간도 제공받고, 잠도 잘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친 것이라고는 오직 가운 뿐. 그리고 배경은 어두운 조명. 사람들은 어두운 조명에 비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서로 좋아하는 타입을 찾으며 서성대고, 계약이 성립하였을 때만 섹스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계약이 여러 번 이루어진다면 여러 사람과도 섹스를 할 수 있고, 섹스를 하는 방법도 서로가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합의에 이르지 않으면 그 뿐, 시장 참가자들은 오늘 계약이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고, 거래할 상대방이 많은 이상 꼭 한 사람에게만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이 섹스시장은 여러 군데에서 열린다. 그래서 그 시장도 분화가 일어난다. 이 섹스시장에서 교환되는 것은 오직 외모밖에 없기에(이렇게 섹스에 충실한 시장이란 정말 얼마나 훌륭한가! 돈도, 명예도, 권력, 옷차림도 다 필요없이 평등하게, 섹스 그 순간에 문제되는 몸뚱아리만!) 다양한 스타일대로, 다양한 연령대대로  모인다. 그래서 이런 섹스시장이 늘어날수록 매칭은 더 늘어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시장주의자라면, 이 섹스시장을 틀림없이 옹호할 것이다. 이렇게 접근도도 높고, 자유로운 공정거래가 일어나는 곳은 많지 않다. 클럽이나 나이트나 콜라텍보다는 공정하지 않은가? 다만 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 자체의 불평등(가령 장애인의 접근이 어렵다거나 하는) 등의 시장주의 자체의 문제점은 안고 있다(여기에 대한 비판이면 나는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칠 것이다). 성병 감염 등의 위험성은 어느 섹스 시장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참여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방어하거나 감수하는 문제, 시장참여에 따르는 리스크의 일종이다.

텔레비전에서 게이 찜방 잠입취재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참, 시장의 질서를 해하는 이런 반시장주의자들 같으니라고. 문란하다느니 난잡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묵음으로 하시는 게 좋겠다. 스스로의 책임과 결정에 의해 누군가는 참여하고 누군가는 참여하지 않는 일종의 시장일 뿐이다. 나는 이런 시장이 이성애자나 레즈비언에게(사실 이건 성차별적 조건과도 연관되는 것일 텐데) 없음을 한탄하는 소리도 꽤 들었더랬다. 이런 근사한 섹스시장이 있다는 게 언제나 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섹스를 하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오르가즘보다도 문득 사람의 살이 그리울 때에는 당신은 어디로 가겠는가. 여기, 꽤 근사한 섹스 시장이 있다. 당신들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당신들이 함부로 모독하지 못하는 어떤 성지 말이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다 잡것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김선주가 그 흔한 '손편지'의 따스함을 글로 쓴 것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다 하는 말이지만, 김선주 선생의 글이 나는 왠지 좀 더 좋다. 
무엇보다도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데...' 같은, 이런 소박한 말들이 감사하다.
과제 때문에 마음'만' 쫒기고 있던 이 저녁이,
'할 일은 걍 하면 되고 시간은 많은' 여유로운 저녁으로 바뀐다.


김선주, <[김선주 칼럼] 편지는 사라지고 단체문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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