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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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스펙터클과 <종로의 기적> 잡것

1.
나에게 가장 스펙터클했던 해는 2009년이었다. 차갑던 연초 용산에서는 한 번에, 하루만에, 몇 명의 목숨이 불탔다. 그리고 어느 주말 한 전직 대통령은 세상을 떴고, 얼마 안 있어 다른 전직 대통령의 국장이 있었다. 한국에 아주 오랜만의 개기일식이 있었고, 개기일식이 있던 날, 대통령이 히죽 웃으며 개기일식을 구경하면서 사진 포즈를 취할 때, 국회는 날치기로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우리 지보이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장마철에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대구에 공연을 갔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채 서늘해지기 전 우리의 형제이자 자매 '스파게티나' 영수 형은 병원에 입원했고, 채 겨울이 오기전 형은 세상을 떴다.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가 한창 <종로의 기적> 다큐를 촬영중인 때였다. 

2.
이번 주에 <종로의 기적>이 개봉된다. 리뷰기사와 영화를 보신 분들이 올린 글들을 읽으며, 자꾸 눈물을 쏟게 되는 것은 나뿐은 아닐 것이다. 병권과 욜, 기즈베와 남일당으로 달려가던 기억, 추웠던 12월 어느 날 HIV 인권 피켓을 들고 종로바닥을 뛰던 밤, 영수 형과 다시 함께할 수 없는 그 눈물과 웃음들, 아, 서로 싸우고, 함께 싸우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얼굴붉히고, 소리치고, 손잡고, 팔짱끼던 날들. 

영화 <종로의 기적>은 나의 스펙터클이 참 많이 담긴, 사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가장 내가 크게 웃을 수 있고, 내가 가장 목놓아 울 수 있는 영화이다. 그 영화가 이번 주에 개봉해서, 자꾸만, 벅차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야 만다. 

3.
그래서 개봉관 몇 안 되는 독립영화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이렇게 내 사심으로 부탁해도 될까, 하면서도, 정말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이 영화의 스펙터클이 결국은 이 2000년대를 통과해 온 사람들의 스펙터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갖는다. 그래서 정말이지 재미있고, 좋은 영화였다고, 기억될 것이라고 믿는다.

4.
오늘 경향신문에는 친구사이 회원들이 나오는 한 면짜리 포토다큐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나오는 한 장면, 포장마차는 영수 형이 오지게 가던 데였더랬다. 영수 형이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가기 전전날, 그곳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취한 말들을 나누면서, 술을 마셨었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스파게티나의 마지막 술이었을 게다. 형, 우리만 남아 거기서 여전히 웃고 떠들고 취해서, 미안해요. 형이 없어서 많이많이 아쉬워요. 

보고싶소, 형. 
영화가 개봉한다니까, 더.







어떤 섹스 시장 잡것

섹스를 하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오르가즘보다도 문득 사람의 살이 그리울 때에는 당신은 어디로 가겠는가. 

섹스는 관계를 전제하므로, 함께 섹스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을 섹스의 시장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섹스의 시장에서 각자는 자신이 섹스와 관련해 가진 가치를 맞대 보고 교환함으로써 거래가 성사되어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이런 섹스 시장 역시도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니어서 여기서도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여기서는 적어도 남성만이 매수자로 등장하는 성매매보다는 좀 더 시장답고, 인신매매나 (알선료는 지불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중간착취와 같은 폭력은 개입되지 않는다. 섹스를 하고 싶다면, 성매매 시장보다 섹스시장으로 가는 것이 좀 더 좋은 판단일 수 있다. 섹스 시장은 사실 연령별로도 다양하게 발달해 있어서 생각보다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아예 이런 섹스시장에서 배제되는 경우의 문제는 남는다. 

여기 세계의 많은 곳에, 전국 곳곳에 분포한 아주 근사한 섹스 시장이 있는데, 여기에 참가하는 자들이 지불할 돈은 1만원(이거면 쾌적하게 샤워도 할 수 있고, 섹스할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섹스할 공간도 제공받고, 잠도 잘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친 것이라고는 오직 가운 뿐. 그리고 배경은 어두운 조명. 사람들은 어두운 조명에 비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서로 좋아하는 타입을 찾으며 서성대고, 계약이 성립하였을 때만 섹스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계약이 여러 번 이루어진다면 여러 사람과도 섹스를 할 수 있고, 섹스를 하는 방법도 서로가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합의에 이르지 않으면 그 뿐, 시장 참가자들은 오늘 계약이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고, 거래할 상대방이 많은 이상 꼭 한 사람에게만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이 섹스시장은 여러 군데에서 열린다. 그래서 그 시장도 분화가 일어난다. 이 섹스시장에서 교환되는 것은 오직 외모밖에 없기에(이렇게 섹스에 충실한 시장이란 정말 얼마나 훌륭한가! 돈도, 명예도, 권력, 옷차림도 다 필요없이 평등하게, 섹스 그 순간에 문제되는 몸뚱아리만!) 다양한 스타일대로, 다양한 연령대대로  모인다. 그래서 이런 섹스시장이 늘어날수록 매칭은 더 늘어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시장주의자라면, 이 섹스시장을 틀림없이 옹호할 것이다. 이렇게 접근도도 높고, 자유로운 공정거래가 일어나는 곳은 많지 않다. 클럽이나 나이트나 콜라텍보다는 공정하지 않은가? 다만 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 자체의 불평등(가령 장애인의 접근이 어렵다거나 하는) 등의 시장주의 자체의 문제점은 안고 있다(여기에 대한 비판이면 나는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칠 것이다). 성병 감염 등의 위험성은 어느 섹스 시장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참여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방어하거나 감수하는 문제, 시장참여에 따르는 리스크의 일종이다.

텔레비전에서 게이 찜방 잠입취재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참, 시장의 질서를 해하는 이런 반시장주의자들 같으니라고. 문란하다느니 난잡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묵음으로 하시는 게 좋겠다. 스스로의 책임과 결정에 의해 누군가는 참여하고 누군가는 참여하지 않는 일종의 시장일 뿐이다. 나는 이런 시장이 이성애자나 레즈비언에게(사실 이건 성차별적 조건과도 연관되는 것일 텐데) 없음을 한탄하는 소리도 꽤 들었더랬다. 이런 근사한 섹스시장이 있다는 게 언제나 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섹스를 하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오르가즘보다도 문득 사람의 살이 그리울 때에는 당신은 어디로 가겠는가. 여기, 꽤 근사한 섹스 시장이 있다. 당신들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당신들이 함부로 모독하지 못하는 어떤 성지 말이다.

이성복, 남해 금산 잡것

바 많이 오는 여름날이면 무조건이래 생각나는, 남해 금산.


이성복,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돌 속에 묻혀 있는 여자가 있다. 굳어 있고,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고, 어떤 힘에 의해서 묻여져 있는 여자. 단단하고, 인내하는 여자. 그런 여자는 사람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 여자 사랑에 '나'는 돌 속으로 들어간다. 돌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여자가 속해 있는 돌의 질서 속에 나 역시 속하게 한다는 것.

그래서 돌 속에서 사랑을 했던가? 그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돌 속의 만남도 끝은 있는 것이어서,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려 덥고, 어쩌면 시원하고, 습하기 그지 없는 날, 오래 앉은 먼지며 추억이며 햇볕으로 달궈진 뜨거움도 다 씻겨간 날, 그래서 돌이 맨질맨질 그 맨얼굴을 훤히 내보이는 날, 결국 그 자리에 돌로 남을 것만 같던 여자는 울면서 떠나가고야 만다. 왜 그토록 단단하던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 이미 돌 속에 묻힌 나에겐 절망스러운 일. 그러나 그 여자의 떠남은 해와 달이 끌어준 것이므로, 어쩌면 어떤 섭리일 수도 있고, 그리하여 원망이나 미움은 있을 수는 없다. 그래, 해와 달이 이끌어 떠난 것이므로.

내가 돌 속에 들어갔던 것과 그 여자 돌 속에서 떠나간 것은 과거형이나, 혼자인 것은 지금 바로 현재인 것.

그래서 '나'는, 그 푸르고 아름답다는 남해 금산 하늘가에 혼자 남을 뿐. 혼자 남는다고 하여, 나 사랑에 누가 돌 속에 들어오겠는가. 그래서 나는 거꾸러져 푸르고 깊은 바닷물 속에 잠길 뿐. 누가 옆에 있겠는가, 다만 나 혼자일 뿐. 그러나 그 물은, 푸른 바닷물이어서 다행일 뿐.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 왜 경상남도 남해군의 금산이어야 하는가. 왜 다른 바닷가의 산이나 바위여서는 안 되고 굳이 남해 금산이어야 하는가.

그러나 남해 금산이라는 말은 웅얼거리다 보면 알게 된다. 남해와 금산이 붙은 그 말소리의 단단하고 뜨뜻한 애처러움을. 이성복 스스로 남해의 'ㄴ'과 금산의 'ㄱ'은 바다의 유동성과 산의 날카로움을 예고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뜻이었을 것.

도저한 사랑은 사실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도 몰라, 이렇게 깊은 사랑은 '전설'같이 변하지 않는 돌과 푸른 바닷물의 이야기로, 해와 달이 사랑과 사람에 개입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전설 없이 우리의 현실 속 사랑은 없는 것. 고것 참 이상한 것.

사춘기도 달라요 일상

역시 훈훈한 퀴어 단편영화 <이춘기>(윤재상 감독).
급우를 짝사랑하는 아이와 그 짝사랑 대상인 친구, 그리고 보건선생님의 삼각 스토리!
라고 말하면 내용이 완전 왜곡되려나.

이건 정말 강추강추!

레즈비언상담소에서 <이춘기> 상영회를 하나 보다.
또 보고 싶다.
주인공이 잘생긴 소년이어서 그런 것은 절때 아니다.ㅋ


사진설명 : 보건생님과의 섹슈얼리티 상담 시간


그나저나... 월요일 발제문 마감 하나 있는데 한 줄도 안 썼으니 이건.... ㅠㅠ



오늘의 결론 : 발제문 쓰기는 시작해내기가 쉽지 않아 ㅠ


사랑을 전하는 말은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아 일상

상콤한 스웨덴 단편 퀴어, <럭키 블루>
캠핑장 사장의 아들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풋풋한 사랑!
한여름밤 보기에 그만인 영화.

이런저런 노래들을 듣다가 문득  FR David의 Words가 듣고 싶어졌고,
이 노래를 듣다보면 이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다시 봐도, 므흣한. ㅋ
사랑을 전하는 말은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아. Words don't come easy.





그나저나... 왜 자꾸 영상 오른쪽이 잘리는 걸까... 컴맹 서럽게. ㅠ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이사와 커밍아웃 일상

1.
윗집에 살던 형과 형수가 오늘, 저기 먼 종로구 산동네로 이사를 갔다.
길이 좁아 이사 트럭도 들어오지 못해 이사해주시는 분들이 개고생을 했지만, 어느 방에서건 산과 숲이 보이는 동네.
같이 산다고 자주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떨어져서 살게 되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조금은 끈 떨어진 기분?

2.
아랫집에 살던 누나와 나도 이제는 헤어져, 누나는 신혼집으로, 나는 학교 앞 작은 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방이 좁아 내 짐들은 형네 집과 누나네 집으로 이산.
오늘 형네 집으로 보낸 짐도 몇 박스, 그리고 내 오래된 책상, 책장, 침대도 다 형네 집으로 가게 됐다.
그런데 막상 지금 방을 둘러봐도 휑뎅그렁하지 않은 건 당췌... 이 짐들이 다, 내가 이사갈 작은 방에 들어갈까? ^^;;

3.
겸사겸사 상경한 어머니와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옛 친구사이 부회장이었던, 에이즈 합병증으로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오준수라는 분의 추모문집 표지에서 "남성동성애자" 어쩌고 적혀 있는 것을 보시고는 눈이 휘둥그레하신다. 내용도 넘겨 보시고. 쩝.

4.
나름 이런저런 문건들과 자료들을 어머니가 보셔도 딱히 감추거나 그러지는 않았더랬다.
그런데 그 다음날, 어머니와 수다 떨다가 알게 된 스토리.
부모님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팬이었다가, 동성애 얘기가 나오면서 안 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초큼 섭섭하기도 하고, 철렁하기도 했다.
이거 참. 커밍아웃을 언제한담. ㅋ 용기없는 나는, 대놓고는 못 하고, 공개적으로 해버리게 될 가능성, 매우 큼.
그나저나 아니 왜 <인생은 아름다워> 대신에 <전우>를 보신단 말이냐고요... ㅠㅠ


오늘의 결론 : 이사를 통해 커밍아웃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아야 겠다. ㅋ

헤르타 뮐러, 숨그네 잡것



헤르타 뮐러, 박경희 역, <숨그네>, 문학동네, 2010.

소비에트의 수용소는 이미 솔제니친의 소설 속에 등장했었다. 헤르타 뮐러는 소비에트의 수용소를 다른 방식으로, 다른 주체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1944년 붉은군대가 루마니아에 진격하고, 소비에트는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길 것을 요구한다. 그 독일인들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이 기다리고, 이와 빈대가 사람의 무게만큼 함께하며, 중노동을 죽기 전까지 해야 할 것만 같은 수용소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짧은 몇 단어와 문장으로 그 체험을 상상할 수는 없을 터. 이 소설은 읽는 사람들에게까지 극한의 경험을 주입시킨다.

주인공은 동성애자 소년. 동성애자라는 것은 중요하기도 하고,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동성애자는 그곳에서 같은 경험을 하며 다른 사람과 같거나 다른 상념에 빠진다. 더 힘들기도 하고, 덜 힘들기도 하다. 연약하기도 하고,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굶주림만큼은 성별도, 성정체성도 무화시켜버리는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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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한때였다. 그러고는 굶주림뿐이었다. 배고픈 천사가 발작하며 우리 주변을 맴돌고, 뼈와가죽의시간이 오고,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고  ...... 우리는 뼈 남자와 뼈 여자가 되어 성별이 사라진 후로는 배고픈 천사와 짝짓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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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굶주림은 빵도둑에게 모두가 가혹하게 대하게 하지만, 또 그 가혹함을 그 누구도 비난 못하게,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던 빵도둑조차도 불만이 있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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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법정은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처벌만 내릴 뿐이다. 빵의 정당성은 배고픔이 뒤따르지 않는 폭력과는 다른 폭력이다. 빵의 법정에는 일반적인 도덕이 들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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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체험을 한 주인공은 다시 고향에 돌아오지만, 그는 가족들과 신체접촉도 하지 못할 만큼, 17년을 살아온 집이 더이상 자신이 집이 되지 못할 만큼, 낯설게 된다. 길거리에서 수용소에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만나도, 서로는 외면한다. 가족들을 대면하는 것도 고통이고, 수용소에서 함께했던 사람과 함께하는 것도 고통이다. 그리고, 밤마다 그는 다시, 수용소로 끌려가는 꿈을 꾼다. 그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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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밤이면 다시 처참해질 권리를 가지려는 것일까. 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없을까. 어째서 나는 소용소가 내 것이기를 강요할까. 향수. 마치 그것이 필요하다는 듯.

나는 배고픔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자부심이 아니라 겸허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침묵으로도 말로도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침묵할 때도 과장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나 거기 있었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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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가족사가 담겨 있고, 뮐러가 함께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 했던 수용소 출신의 시인의 이야기가 주축이 된 이 소설은, 몹시 시적이고,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불친절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어떻게 수용소의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책이 2/3를 넘어갈 무렵부터는, 심장에 통증이 온다. 생각은 한참 후에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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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시의 옷을 입은 비극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2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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